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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TORY Official

ISTORY Seongjin

정가 $57.00 $0.00 단가

엘보우 패치 컨셉

국내 유일한 소해금 연주가 박성진은 12살 때부터 소해금 연주를 시작하여 현재도 소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전달해서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고 힘과 용기를 내어 삶을 잘 영위해 나가도록 돕고 싶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바램을 담고자, 소해금에서 울리는 선율이 저 멀리, 먼 곳까지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국경이 따로 없는 따뜻한 노을의 하늘을 그려 보았다. 또한,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듣고 힐링이 되고 마음이 따뜻해 지기를 바라기에 따뜻한 계열의 색상을 많이 사용하였다.
*** RIVER 강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태어나서 자란 고향인 북한을 떠나, 현재는 남한에서 또는 제 3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는 뜻에서 우리 브랜드 엘보우 패치에는 ‘강(river)이 항상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있다.

박성진 | 고향: 평양시 | 소해금 연주가

어린 시절,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나는 누나들과 함께 줄넘기, 공기놀이 등 여성들이 즐겨하는 놀이를 같이하곤 했다. 13살 무렵까지 나는 누나들을 언니라고 부를 만큼 친하게 지냈다. 하지만 12살에 평양 예술대학에 입학하게 되면서 내성적인 나의 성격도 외향적으로 변하게 되면서 액션 영화 등을 보면서 영화의 장면을 따라 하기도 하며 잘난 척도 많이 했었다. 무엇보다 예술대학에 가면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어려운 학문은 공부 안 해도 된다고 하여 입학을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대학 동기들은 나이가 다 달랐는데 나는 가장 어린 나이었다. 그래서 형들과 어울려 다니며 심부름도 많이 했었다. 한 번은 형들이 대학교 영양식품 창고에 몰래 들어가 간식을 훔쳐 먹고 싶은 마음에 제일 어리고 작았던 나를 창문으로 들려 보냈다. 들어가서 간식을 내보냈지만 키가 작아 창문으로 나오지 못해 하룻밤을 창고에서 잤던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12살에 입학하여 9년을 기악을 전공한 나는 21살이 되어서야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동시에 군악대로 군대를 가게 되었다. 보통의 군부대는 엄격한 분위기에 배도 많이 고팠지만 내가 복무하던 군악대는 조금은 느슨한 분위기였고, 밥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 몰래 듣던 한국 노래를 친한 사람들 앞에서 불렀던 것이 문제가 되어 군악단에서 제외되었으며 급기야는 황해남도로 좌천되었다. 그곳은 사금을 캐는 곳으로 유명한데, 남한에서 날아오는 삐라로도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남한에서 날아온 삐라를 주어 버리는 일도 많이 했었는데, 다른 군인들 몰래 삐라를 훔쳐보면서 남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다.
그 시점, 고향이 경상도인 아버지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셨고, 또 자식의 미래도 걱정하시며 아버지는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결심을 하여 가족 모두를 불러모아 탈북을 하게 되었다. 중국으로 온 우리 가족은 북한군과 중국군의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고 6개월 후 한국으로 오는 제3국의 경로인 내몽골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한국으로의 길은 정말 멀고 위험했지만 가족과 함께 올 수 있었기에 힘과 용기가 났다.
처음 보는 한국의 모습은 북한과 비교하면 너무 달랐다. 6.25를 같이 겪은 한반도이지만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너무나 다른 문화, 남녀 모두 스키니진과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는 모습에 매우 놀랐었다.
내가 한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음악이었다. 처음에는 유명 트로트 가수 장윤정 씨 소속사에 들어가 앨범 준비를 하였으나 2006년 북한 핵실험 사건이 일어나면서 무산되었다. 가수로써 앨범의 기회가 날아갔지만 노래 말고도 나는 악기를 다를 줄 알았기에 북한에서 연주하던 “소해금”(북한에서 해금을 개량해서 만든 북한 전통악기)을 다시 연주하게 되었다. 당시 북한 악기였던 소해금을 구하기 위해서 파주에 있는 민속악기 박물관에서 소해금을 발견하여 소속사 사장님이 중국을 통해서 악기를 구해주셨다.
이렇게 나는 한국에 한 명 밖에 없는 소해금 연주자가 되었으며, 북한에서 연주하던 소해금을 한국에서 다시 연주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 소해금이 없어 미래에 소해금 연주자도 없을 거라는 점도 안타까운 점 중에 하나이다.
내가 한국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은 노력한 만큼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는 것과 대중음악예술이 활발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입국한 지 15년 정도 되는데 그동안 정말 많은 공연을 하면서 많은 지역과 마을을 돌아다녀보았다. 그러면서 어렵고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많은 것을 보았다. 나는 앞으로 이렇게 힘들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힘을 내어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음악을 계속 꾸준히 하고 싶다.

좋아하는 색: 노란색
좋아하는 사람: 어머니
좋아하는 스포츠: 무엇이든 직접 하는 운동
인생모토: 인생을 즐겨라
좋아하는 것: 그림,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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